•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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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공적비 아래 그가 판 우물이 남아 있다.>

 

팔마산 아래 무성한 잡초에 덮여있는 공적비가 하나 초라하게 서 있다. 바로 1930년대 팔마산 인근에서 일신야학원을 운영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선행을 베풀던 김용진(金瑢鎭, 1869)의 공적비다.

 

경향 잡지 1935년 10월호에서는 김용진의 공로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극찬하였다. 경향 잡지 기사에 따르면 김용진의 선행을 찬양하는 기념비를 가난한 사람들이 군산에서 전주로 가는 팔마재 큰 길가에 세웠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당시에 건립된 기념비가 지금도 팔마산 기슭에 남아 있다. 애초에는 큰 길가에 세웠었는데 전북체전으로 도로가 확장되면서 김용진을 기억하는 동네 사람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다.

 

흥남동에서 태어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에게 김용진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주민은 "그 분이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해 줘서 동네 사람들이 공적비를 건립했다"고 말했다.


당시 팔마산 인근이 거주하는 주민들은 가난해서 팔마산 앞에 흐르는 냇물 음용수로 사용했었는데 김용진 씨가 5개의 우물을 개발해서 동네 사람들이 샘물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공적비 앞에 그가 판 우물이 남아 있다. 


김용진의 군산 행적에 관해서 연구한 김두헌(근대학자)의 자료에 따르면 비석 전면에는 '金公瑢鎭永年記念碑'라고 곧, ‘김용진 씨의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는비’라고 기록되어있다. 전면 좌·우측에 ‘惟公事爲 遠近模範 言顧其行 百年無玷 建校十載 樂在育英 勒石記念 異口同聲’이라고 곧, ‘오직 공공의 일에 힘써 봉사하였으니, 원근의 모범이 되었다네, 그 행위를 돌아보고 말하고자 함에, 백년토록 허물이 없을 것이로다.


학교를 세운 지 10년 동안 오직 영재를 육성하는데 인생의 즐거움을 두었다네, 그 업적을 돌에 새기어 기념하자고 이구동성이라네.’ 그리고 뒷면에는 ‘甲戌 十二月 日 八馬山里 立’이라고 곧, ‘1934년 12월에 팔마산 마을 사람들이 이 비를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초라하게 잡초에 덮여 있던 공적비를 '팔마성당 대건 회원들'과 '팔마예술공간 대표'와 함께 잡초제거와 주변 정리를 하였다.

 

이들은 "평소에 잡초에 덮여 아무도 돌보는이 없는 공적비가 안타까웠다"며 "김용진 회장의 이웃사랑 실천의 정신을 본받고, 그분의 공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잡초제거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활동을 마친 이들은 "행정당국에서 이곳에 쉼터 의자를 마련하고 그분의 정신을 기리는 곳으로 조성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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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잡초에 덮여 있던 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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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잡초를 제거하자 공적비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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