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의 도시, 바다를 잃다” — 국립해양도시과학관 논의에서 사라진 군산의 이름
-전북도·김제시·해양수산부가 함께 만든 ‘새만금 해양미래 구상’, 정작 해양의 도시 군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북, 미래형 해양도시 과학관 추진... 그러나 군산은 없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새만금의 입지 여건과 미래 비전을 반영한 ‘국립해양도시과학관(가칭)’ 건립 구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1월 3일 열린 중간보고회에는 해양수산부, 전북도, 김제시, 관련 전문가, 용역 수행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특히 김미정 전북도 새만금해양수산국장과 김희옥 김제시 부시장이 직접 참여해, 새만금 김제지구를 중심으로 한 전북형 해양과학문화 허브 구축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군산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전북 유일의 무역항을 보유한 도시, 서해안 해양경제의 전초기지라 불려온 ‘해양의 도시 군산’이 전북의 해양미래 논의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군산보다 한발앞선 김제시의 행정력 — “기획부터 타당성 검증까지 완성형 대응”
이 사업의 뿌리는 2021년 전북연구원의 제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연구원은 ‘전북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바다를 보유하고 있으나, 국립해양문화시설이 전무하다’며 국립 해양문화시설 건립의 필요성을 정부에 촉구했다【전북연구원 이슈브리핑 제246호】. 이후 김제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 2022년 3월, ‘국립 새만금 아쿠아월드 타당성 조사 용역’ 착수
▶ 2022년 9월, 중간보고회에서 ‘새만금권 해양문화벨트 구축 방안’ 제시
▶ 2022년 11월, ‘국립 해양생명과학관 타당성 조사 최종보고회’ 개최
▶ 2023년 5월, ‘심포마리나 조성사업 기본구상’ 착수
▶ 2025년 4월, 해양수산부 예타 재신청을 위한 ‘보완용역’ 착수
김제시는 3년간의 과정을 통해 정책적 연속성과 행정 추진력을 확보했다. 정성주 김제시장은 “새만금권 해양문화시설은 전북의 미래 해양경제를 견인할 핵심 인프라”라며 지속적으로 예비타당성 통과를 위한 중앙 협의를 주도해왔다.
그 결과, 이번 전북도의 ‘국립해양도시과학관 구상’은 김제시 주도 구상으로 이어졌다. 전북도는 김제와 함께 2억 원 규모의 보완용역을 발주했고, 2026년 1분기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선정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군산은 왜 빠졌나 — 해양행정의 실종
이처럼 김제시가 새만금 해양미래 구상을 구체화하는 동안, 군산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군산은 전북 유일의 무역항(군산항)을 운영하며, 수십 년간 전북 해양수산 행정의 중심 역할을 맡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해양도시과학관 논의 과정에서 군산시 관계자는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군산시 새만금정책담당이나 해양수산 관련 부서조차 “도 차원의 구체적 회의 일정이나 협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소통의 문제를 넘어, 군산시의 해양정책 방향이 실종되었다는 증거다.
한 해양정책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김제시는 새만금을 기회로 본 반면, 군산은 여전히 과거의 항만도시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행정의 선제 대응이 없으면 국책사업은 자연히 다른 도시로 간다.”
● ‘해양의 도시’라는 간판만 남은 군산
군산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해양의 도시’라 불러왔다. 그러나 현실의 군산은 해양 관련 국책사업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새만금 신항 1단계 사업의 일부를 김제 관할로 주장하고 있고,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도시과학관’ 논의에서도 군산 배제, 새만금 해양레저·관광벨트 중심은 심포항(김제 진봉면) 으로 이동. 이쯤 되면 “군산은 더 이상 해양의 도시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 정치와 행정, 동시에 침묵하다
이 사안의 더 큰 문제는 군산 정치권의 침묵이다. 전북도가 김제시와 함께 해양과학관 유치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군산시의회나 지역 정치인은 아무 반응이 없다.
시의회는 결의문 한 장 내지 않았고, 시장과 국회의원 역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들은 ‘군산항 개발’, ‘해양수도 군산’이라는 구호만 반복하고 있다. 정작 ‘새만금 시대의 해양비전’ 논의 테이블에서는 군산의 자리는 비어 있다.
● 행정이 멈추면 도시도 멈춘다
김제시가 3년에 걸쳐 타당성 조사–기본구상–보완용역–예타 신청으로 정책을 입체적으로 끌고 가는 동안, 군산은 단 한 건의 새만금해양 관련 신규 용역도 추진하지 않았다.
이는 행정의 전략 부재이자, 미래 비전을 그릴 의지의 부재다. “군산은 산업도시, 김제는 해양관광도시”라는 구도가 이대로 고착된다면, 새만금의 해양산업 중심축은 완전히 김제로 이동할 것이다. 사실상 김제시가 새만금의 중심으로 보인다.
● “해양의 도시가 바다를 잃는 순간”
새만금의 미래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군산은 산업단지 및 수상태양광 중심으로 전개되고, 국립새만금수목원은 부안에자리잡고 있다 반면 마리나와 국립해양도시과학관 구상은 김제가 주도권을 쥔채 해양문화·관광 앵커시설은 김제로 분화되는 양상이다.
군산은 여전히 ‘해양의 도시’라는 명함을 들고 있지만, 정작 해양의 미래를 그리는 자리는 군산이 아니라 김제다.
해양의 도시가 바다를 잃는 것은행정이 비전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군산의 정치권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군산 몫 사수’라는 낡은 구호와 삭발이 아니라, 새만금의 바다에서 군산의 미래를 되찾을 실질적 정책 비전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군산은 바다를 잃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정치와 행정 모두에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