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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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당선증을 받는 조남현 이사장 당선자.>

 

2022127일 군산팔마신용협동조합은 조합원 총회를 통해 8년 동안 이사장으로 재직한 오봉천 이사장의 뒤를 이어 조남현 감사가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신용협동조합의 역사를 돌아보면 군산지역의 신협설립의 기초는 임실치즈로 유명한 지정환 신부가 놓았다. 이웃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중시한 지정환 신부는 신협운동이 최적의 해법이라 판단하고, 1969임실치즈신협을 조직하고, 신협운영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970년 전주교구의 신협지도 신부를 자원하고, 전라남북도를 순회하며 신협교육, 경영지도, 감사활동 등에 나서며, 주민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낙후된 지역경제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지 신부의 노력으로 1972년 당시 전북 지역에만 41개의 신협이 설립되었다.

 

팔마 신협도 1972년도에 윤일만 초대 이사장으로 하여 군산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정환 신부는 생전에 신협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 대해 푼돈을 저축하고 자금이 필요할 때 저리(低利)로 편리하게 이용하는 신협이야말로, 당시 농촌의 고리채 문제 해결과 지역발전을 위한 최선의 해법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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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신협교육중인 지정환 디디에 신부>

 

팔마 신용협동조합은 문규현 신부의 노력을 잊을 수가 없다. 1980년도 2월에 팔마성당에 부임하여 82년도에 성당을 개축하여 팔마신용협동조합사무실을 정식으로 개소하고 조합원 배가 운동과 출자증액 운동을 통해서 83년도에 1억 원 돌파를 하며 현재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당시 신협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팔마성당의 사무실 한쪽에 책상 하나 놓고 무보수로 봉사를 하다 순직한분도 있다.

 

초기에는 조합원들이 푼푼이 돈을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담보가 아닌 신용으로 대출을 해 주고 자금이 필요한 조합원은 순수한 신용으로 대출을 받아 장사를 하여 돈을 갚는 초기 신용협동조합이었다.

 

당시는 금융의 전문가가 아닌 신자들 중에 여신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하여 대출을 결정하였다. 물론 여신위원들은 무료봉사였다.

 

초기에는 신부님들이 이사장을 역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협의 재정이 열악하여 급여를 지급할 수가 없는 게 주된 이유였고 조합원 배가 운동을 하는데는 신부님의 헌신적인 봉사와 역활이 중요했다.

 

돌아가신 김병엽 신부님은 팔마성당을 떠나는 마지막 미사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신협의 주인으로 신협을 잘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실 정도로 신협운동에 애정이 깊었다. 

 

이 후 금융관련법이 개정되면서 현재는 설립당시의 정신을 찾아 볼 수 없는 금융기관이 되었다. 신자들에게는 한편 아쉬움이 많은 이유다.

 

한편 이날 신협 정기총회장에는 1,276 명의 조합원이 투표에 참여하였다. 그동안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팔마신협최초의 일이다.

 

이렇게 이사장 자리를 놓고 투표까지 진행하게 된 이유를 한 직원에게 물으니 이사장의 출근수당이 적지 않은 1일 25만 원정도 라고 귀띔해 준다. 적지 않은 수당이다. 여기에다 일정 판공비도 제공받는다고 한다.

 

이사장 선거가 치열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초기 설립자들과 무보수로 노력한 그들의 정신은 찾아 볼 수 없는 신협 이사장 투표 현장을 보며 왠지 씁쓸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다.

 

초기설립정신은 찾아 볼 수 없는 금융기관이 되어버린 신협의 이사장 선거를 끝까지 지켜본 한 조합원은 초기 신협의 정신을 일부라도 살려서 지역에 봉사하는 모습을 신임 이사장에게 기대해 보겠다.” 라며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조남현 이사장당선자의 주요 공약중 "매년 사회공헌 1천만원 출연 소외계층 지원"공약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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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마 신용협동조합 최초 열띤 이사장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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