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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국제공항 취소 판결…갈라진 지역의 목소리
- <사진/군산공항, 버드스트라이크/ 환경단체 사진제공> 서울행정법원, 기본계획 취소 판결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전략환경영향평가의 부실, 특히 조류 충돌 위험과 세계자연유산 갯벌 보전 영향에 대한 미흡한 검토를 지적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로 새만금 신공항 사업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군산시 “공항은 미래 성장 기반” 군산시는 판결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새만금국제공항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라, 항만·철도와 함께 트라이포트 완성의 핵심이며, RE100 기반 첨단기업 유치와 수출입 물류 활성화를 위한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새만금과 군산의 미래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전북특별자치도와 협력해 공항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입증하겠다”며 사업 의지를 거듭 밝혔다. ▲군산시의회 “시민 염원, 반드시 지켜야” 군산시의회 역시 강경한 입장을 냈다. 의회는 “이번 판결은 새만금 사업 전반을 위협하고, 지역의 미래 전략을 흔드는 중대한 좌절”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또한 “새만금국제공항은 항만·철도·공항이 결합된 물류 거점이자 27만 군산시민의 염원이 담긴 국가 프로젝트”라고 밝히며, 국토교통부가 즉각 항소에 나서 차질 없는 추진을 보장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북특별자치도 “항소 통해 반드시 추진”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는 입장문에서 “180만 도민의 뜻과 국가 균형발전의 대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이라며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전북도는 즉시 국토부와 협력해 항소 절차에 착수하고, 항소심을 통해 공항의 필요성을 입증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지사는 “새만금국제공항은 단순한 SOC 사업이 아니라, 전북의 미래를 떠받치는 국가기간 인프라”라며 “도민의 뜻을 모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위법·무용한 사업 중단해야” 반면 환경단체들은 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즉각적인 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은 “이번 판결로 사업의 위법·위험·무용성이 드러났다”며 “새만금국제공항은 미군의 전략적 거점 확장 논리와 맞닿아 있으며, 도민을 기만한 무용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단체는 국토부와 전북도가 도민과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추가 공사 절차를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갈라진 지역사회…앞으로의 쟁점 이번 판결로 새만금국제공항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지자체와 정치권은 항소를 통해 사업 정상화를 강하게 추진할 뜻을 밝혔고, 환경단체와 시민사회는 법원이 이미 위법성을 인정했다며 원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결국 쟁점은 ▲항소심의 판단, ▲환경·안전성 평가의 보완 가능 여부, ▲군산공항과의 중복 논란, ▲국가균형발전 명분과 환경보전 가치의 충돌로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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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국제공항 취소 판결…갈라진 지역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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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국제공항 취소 판결…갈라진 지역의 목소리
- <사진/군산공항, 버드스트라이크/ 환경단체 사진제공> 서울행정법원, 기본계획 취소 판결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전략환경영향평가의 부실, 특히 조류 충돌 위험과 세계자연유산 갯벌 보전 영향에 대한 미흡한 검토를 지적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로 새만금 신공항 사업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군산시 “공항은 미래 성장 기반” 군산시는 판결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새만금국제공항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라, 항만·철도와 함께 트라이포트 완성의 핵심이며, RE100 기반 첨단기업 유치와 수출입 물류 활성화를 위한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새만금과 군산의 미래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전북특별자치도와 협력해 공항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입증하겠다”며 사업 의지를 거듭 밝혔다. ▲군산시의회 “시민 염원, 반드시 지켜야” 군산시의회 역시 강경한 입장을 냈다. 의회는 “이번 판결은 새만금 사업 전반을 위협하고, 지역의 미래 전략을 흔드는 중대한 좌절”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또한 “새만금국제공항은 항만·철도·공항이 결합된 물류 거점이자 27만 군산시민의 염원이 담긴 국가 프로젝트”라고 밝히며, 국토교통부가 즉각 항소에 나서 차질 없는 추진을 보장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북특별자치도 “항소 통해 반드시 추진”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는 입장문에서 “180만 도민의 뜻과 국가 균형발전의 대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이라며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전북도는 즉시 국토부와 협력해 항소 절차에 착수하고, 항소심을 통해 공항의 필요성을 입증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지사는 “새만금국제공항은 단순한 SOC 사업이 아니라, 전북의 미래를 떠받치는 국가기간 인프라”라며 “도민의 뜻을 모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위법·무용한 사업 중단해야” 반면 환경단체들은 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즉각적인 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은 “이번 판결로 사업의 위법·위험·무용성이 드러났다”며 “새만금국제공항은 미군의 전략적 거점 확장 논리와 맞닿아 있으며, 도민을 기만한 무용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단체는 국토부와 전북도가 도민과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추가 공사 절차를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갈라진 지역사회…앞으로의 쟁점 이번 판결로 새만금국제공항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지자체와 정치권은 항소를 통해 사업 정상화를 강하게 추진할 뜻을 밝혔고, 환경단체와 시민사회는 법원이 이미 위법성을 인정했다며 원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결국 쟁점은 ▲항소심의 판단, ▲환경·안전성 평가의 보완 가능 여부, ▲군산공항과의 중복 논란, ▲국가균형발전 명분과 환경보전 가치의 충돌로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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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신시도와 최양업 신부
- 새만금개발공사에서 올 하반기에 착공하는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사업 구역은 과거 프랑스 군함이 좌초된 곳으로 근대역사 관점에서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신시도는 신라 최고의 학자 최치원의 설화가 살아 있는 곳이고, 한국천주교 2번째 신부인 최양업(토마스)이 1달동안 체류한 곳으로 한국천주교 신학교를 설립한 메스트르 신부가 입국한 곳으로 알려졌다. ◈ 최양업과 김대건. 최방제 세 소년의 신학생 발탁 최양업은 15세에 (1836년 12월 3일)한국의 첫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서울에서 라틴어 수업을 받던중 김대건(안드레아). 최방제(프란치스코)가 합류하여 중국을 거쳐서 6개월의 여정속에 1837년 6월 7일 마카오에 도착하여 신학생 수업을 받았다. ◈ 최양업 신부 통역관으로 프랑스 군함에 승선 1847년 7월 30일 프랑스 군함은 프랑스 선교사 처형에 관해 조선 정부에 보낸 서한의 회문(回文)을 받으려는 목적과 통상 조약을 통한 경제. 외교적인 이권 획득의 목적으로 조선으로 출발하며 최양업 부제와 스승인 메스트르 신부를 통역관으로 승선시켰다. 당시 최양업 신부는 귀국의 희망을 안고 통역관 신분으로 프랑스해군 글로와르호와. 빅토리외즈 호에 승선했다. 천주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는 프랑스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지만, 경제적⋅외교적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프랑스군대는 8월 10일(음력 6월 30일) 일찍이 아무도 탐색한 적이 없는 고군산 인근에 도착하였으나, 수심이 낮은 탓에 글로와르호와 빅토리외즈호가 거의 동시에 좌초하고 말았다. 게다가 당일과 이튿날에는 바닷물이 거의 빠져 꼼짝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이에 선장은 8월 12일 좌초된 곳에서 2마일 (약3.2km) 지점에 있는 섬으로 우선 무기와 탄약, 포와 환자, 연소한 수병들과 함께 하역 중대를 보낸 뒤, 그들이 수량이 많은 물줄기를 찾아내자 식량과 남은 인원들 모두 그곳에 상륙토록 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병 2명이 익사하고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포함한 나머지 560명은 무사하였다. 당시 고군산진의 요망감관 윤승규는 고군산진의 유진장 조경순 에게 보고하였고, 조경순은 이를 전라감사 홍희석에 보고하였으며 홍희석이 처음으로 조정에 보고하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홍희석은 프랑스 함대의 좌초를 표착으로 표현하면서 표착 장소를 만경현 신치도 무영구미(茂永仇味) 풀두렁(草塍), 즉 개펄의 해초언덕으로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최양업 부제는 1847년 7월 30일 귀국의 희망을 안고 프랑스 함선에 승선하여 광동성 앞의 황포를 출발하였으나 8월 10일 프랑스 함대가 ‘부안 화도 뒷바다’ 에서 좌초함에 따라 8월 12일에는 신치산 아래 남쪽 모래사장에 상륙하여 야영을 하였다. 이후 그는 구조선인 영국 함선을 타고 9월 12일(음력 8월 4일) 상해로 떠날 때까지 정확히 한 달 동안 신치도에 체류하였다. 후일 메스트르 신부는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2번의 실패 뒤에 1852년 8월에 신시도로 입국하게 된다. 상해 프랑스 영사의 도움 아래 예수회의 엘로 신부를 선장으로 삼아 조선 연안으로 출발하였고. 이후 그들 일행은 무사히 고군산도의 신치도 풀두렁 근처에 도착하여 신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조선 관리가 탄 배를 만나자, ‘좌초했던 프랑스 함대의 잔류물을 수거하러 왔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그곳에 정박하였다. 그런 다음 8월 29일 새벽, 메스트르 신부는 조선옷으로 갈아입고는 신치도에 상륙하여 마침내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신치도는 최양업 부제가 귀국로 탐색 과정에서 처음으로 조국 땅을 밟았던 곳이다. 이곳은 그가 1847년 8월 12일에 입도하여 9월 12일까지 한 달 동안 체류하면서 조선으로의 완전한 귀국을 염원하던 의미 있는 장소요, 비밀리에 조선의 천주교 신자와 상봉할 수 있었던 만남의 장소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치도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메스트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장소였고, 외교사적으로는 한불 관계사와 프랑스 함대의 조선 원정사를 이해하는 데도 필요한 장소가 된다. ◈ 메스트르 신부 메스트르 신부는 1853년 ~1856년 새 교구장이 입국하기까지 조선교구의 장상 직을 맡아보았으며. 비록 박해로 시설을 갖출 수는 없었지만 조촐하게나마 조선에서 처음으로 고아사업이 시작되었다. 또한 그는 국내에서의 성직교육의 긴급성을 절감하고 1855년 제천(堤川) 배론에 성 요셉신학교를 개설하여 신학생을 양성하였고 후일 충청도로 내려와 사목을 하던중 1857년 12월 20일 과로로 쓰러졌고 인근 덕산(德山) 황무실에 묻혔다. ◈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김대건 신부는 1845년 10월 12일 황산포 나바위에 첫발을 디딘 후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여 1년이 안 되는 짧은 사제생활을 한 반면 최양업신부는 15세의 나이로 1836년 12월 3일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1849년에 변문을 통해 조선으로 귀국했으며 전국각지를 돌며 10여년을 사목을 하던 중 1861년 6월 15일에 선종한 땀의 순교자였다. 최양업 신부는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로써 땀의 순교자 칭호를 받으며 현재 가경자로 선포되었고 로마 교황청의 기적심사를 통해 곧 복자품에 오를 것으로 기대되며, 성인으로 선포되기를 한국천주교회는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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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신시도와 최양업 신부
